"바쁘다 바빠." 를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사는 우리지만, 가끔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좋은 책을 한 권 읽고 싶을 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한권이 필요하다.
하루 10분 동안 이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 어찌 뿌듯하지 않겠는가. 이런 의도로 <한국문학 대표 단편소설> 중에서 길지 않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은, 한 번쯤은 생각하며 왜 그럴까? 할 수 있는 책들을 엄선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동백꽃>은 농촌의 순박한 소년, 소녀의 사랑을 해학적이면서 서정적인 필치로 그린 작품으로 짧고 간결한 문장과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 토속적인 어휘 구사 등이 특징적인 감유정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으로 불러 와서 춘천 출신인 김유정은 작품속에서 자연스럽게 노란색이고 알싸한 냄새가 나는 동백꽃이라고 묘사했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흔히 아는 붉디 붉은 동백꽃이 아닌 원래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제목이 <생강나무꽃>인 셈이다.
'나'에 대한 수줍은 감정을 표현하는 점순이의 '감자'를 알아주지 않는 눈치없음이 답답하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닭싸움'을 시키며 '나'에 대한 미움과 정이라는 이중적 감정을 표현하는 점순이가 풋풋하다. 화해와 사랑의 분위기를 형성해주는 동백꽃이 더 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른 봄 산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알싸한 동백꽃향에 취해 순박하고 눈치없는 농촌 청년 '나'와 영악하고 집요하고 적극적인 점순이의 풋풋한 사랑이 톡톡 튀는 어휘를 타고 우리에게 전달되는 듯하다.
이런 사랑을 해 보았던가?
2017년.5월. 어느 봄날.
김유정 [金裕貞 ]
출생 - 사망
1908년 1월 11일 ~ 1937년 3월 29일
출생지-강원도 춘천
김유정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표현하는데 묘미가 있다. 하지만 민중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둔 민중적 성격의 문학이라고 해서, 그의 작품들이 한갓 통속적 흥미나 저급한 희극성에 매달려 있다고 보면 곤란하다. 김유정의 소설들은 흔히 인물들의 어리석음이나 무지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일면이 있지만, 그것은 그들 자신의 가난하고 비참한 실제 삶과 이어져 슬픔을 느끼게 하는, 말하자면 해학과 비애를 동반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농촌 배경의 토속적 작품이 많다 보니 촌스런 농촌총각이 떠오르는데 사실 당대 다른 젊은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도시인의 감성으로 살았다. 김유정은 구인회의 회원으로 스스로 '선각자', '천재'로 칭한 이상과 특히 친한 친구였는데 서로 병고(폐결핵)로 고통을 겪자 동반자살하기로 약속했으나 김유정의 반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이상은 김유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인 '김유정'을 지었을 정도로 특히 김유정을 존경하고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한다. 안타깝게도 소설속의 김유정은 아주 건강하고 활동적인 청년이었으나 현실의 김유정은 이 작품 발표 후 1달 뒤 사망했다. 이 두 사람은 동반자살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실제로 김유정은 1937년 3월 29일에, 이상은 4월 17일에 죽어 18일을 간격으로 함께 세상을 떠났다.
<동백꽃>이나 <봄봄>이 유명하고 교과서에 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작품들보다 덜 암울하고 덜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김유정의 단편들에서는 가난으로 매춘을 하거나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장면들이 종종 보인다. <금 따는 콩밭>만 해도 해학적이지만 상황은 정말로 허탈할 정도로 망한 상황에 친구며 부부끼리 싸우며,< 만무방>이나 <소낙비> 같은 부류는 아예 등장인물이 도둑질, 매춘을 권하는 내용이 있다.< 산골 나그네>는 술집 작부까지 하다가 혼인, 혼수를 들고 본남편과 도망가는 요즘 흔한 막장 드라마 이야기이고,< 따라지>나 <땡볕> 같은 작품은 아예 작품의 설정부터가 슬프다.< 따라지>는 셋방살이하는 인간 군상들과 주인집과의 기싸움을 그리고 있고,< 땡볕>은 남편이 병든 아내를 지게에 짊어지고 병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그나마 밝다고 꼽히는 <동백꽃>과 <봄봄>도 엄밀히 말하면 지주의 횡포와 착취, 그에 저항할 수 없는 계층이 그려져있다. <동백꽃>과 <봄봄>에서의 소작농이 마름을 대하는 것이, 현대인들에게도 쉽게 이해가 가는 갑과 을의 관계로 요즘 흔히 말하는 '갑의 횡포'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해학적이고 풍자적일 뿐, 이야기의 시작점에는 당시 농촌~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과 현실들이 그대로 녹아있다.